“서울 집값의 기준이 입지에서 대출로 이동하고 있다.”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 시장의 거래 지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가격대별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차등 적용한 정책이 실수요자의 선택 기준을 사실상 ‘대출 가능 여부’로 바꾸면서, 거래는 중저가로 이동하고 고가 시장은 현금 중심 구조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양지영 전문위원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25년 12월 서울 아파트 거래 가운데 15억원 이하 비중은 82.3%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대책 시행 직전인 10월(73.4%)보다 8.9%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15억 심리선’ 형성…대출 규제가 만든 풍선효과
반면 대출 한도가 4억원으로 제한된 15억 초과~25억원 구간은 19.5%에서 13.2%로 6.3%포인트(p) 감소했다. 대출 한도가 2억원에 불과한 25억원 초과 초고가 아파트 역시 7.0%에서 4.5%로 하락하며 거래가 크게 위축됐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15억원 이하 비중은 77.2%에서 82.3%로 5.1%p 상승한 반면, 25억원 초과 비중은 8.6%에서 4.5%로 4.1%p 급락했다. 이는 정책이 시장 수요의 흐름 자체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10·15 대책의 핵심은 가격대별 주담대 한도를 ▲15억원 이하 최대 6억원 ▲15억 초과~25억원 최대 4억원 ▲25억원 초과 최대 2억원으로 차등화한 것이다.
고가 주택 매수 수요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시장에서는 곧 ‘15억원 마지노선’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보고서는 이를 “대출 한도에 따른 가격대별 풍선효과”로 해석했다. 한도가 높을수록 수요가 이동하고, 낮을수록 거래가 위축되는 패턴이 명확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 거래의 무게중심도 외곽으로 이동했다. 2025년 12월 기준 거래가 활발한 지역은 ▲노원구(500건) ▲성북구(297건) ▲강서구(285건) 등 평균 매매가가 비교적 낮은 곳이었다.
이들 지역은 평균 가격이 6억~9억원대로 대출 활용 여지가 커 실수요자 유입이 빠르게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반대로 송파·양천 등 고가 주택 밀집 지역은 15억원 이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지역 간 양극화 흐름도 감지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가 단기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현행 규제가 유지될 경우 서울 아파트 시장은 거래량과 가격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중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거래 측면에서는 대출 한도 6억원을 활용할 수 있는 15억원 이하 중저가 시장으로 수요가 계속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역대 최대 규모의 시중 유동성이 부동자금으로 머물러 있는 가운데 서울 신규 공급은 제한적이고, ‘팔면 다시 못 산다’는 인식 확산으로 매물 잠김 현상까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러한 수급 불균형이 중저가 시장의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대출 규제로 현금 자산가 중심으로 재편된 고가 주택 시장에서는 다른 양상이 예상된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용산, 성동(성수) 등 핵심 입지는 거래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신고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 지역은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기대감이 높고, 한정된 토지와 학군·인프라 등으로 희소성이 부각되는 대표적인 자산가 선호 지역이다. 대출 의존도가 낮은 매수자들에게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만큼 거래 건수와 무관하게 가격 상단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결국 10·15 대책은 고가 수요 억제를 넘어 서울 주택 시장을 가격대(15억 이하 vs 초고가)와 지역(외곽 거래 확대 vs 핵심지 가격 방어)으로 나누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 분절과 양극화 구조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서울 집값의 새로운 경계선은 입지가 아니라 대출이라는 시각이다. 10·15 대책이 그 기준선을 사실상 15억원에 그어 놓았다는 평가다.